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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듣는 마음도 중요
번호 58 작성자 한국PR협회 작성일 2014-04-11
조회수 2543
내용 <이 글은 KOREAPR.review 67 권두제언란에 홍보전문지 KOREAPR.review 발행인 겸 편집인인 심인 사무총장이 기고한 글입니다. 많은 참조바랍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용어를 꼽으라면 단연 ‘소통’이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제는 수직적 대화의 방식에서 수평적 대화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틀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전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바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것을, 후자는 우리 사회가 진전된 발전을 거듭할수록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관행도 진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소통!
사회적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던 시대에는 구성원간의 대화는 정치적, 사회적 분야뿐만 아니라 가족간에도, 교육현장에서도 권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자연히 일방적 의사소통이 주류를 이룰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의 진전에 따른 계층간, 세대간의 분화가 빠르게 이루어짐으로써 권위를 내세운 일방적 소통은 반발과 저항을 불러와 오히려 불통만도 못한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화는 쌍방향적 일 수 밖에 없다. 쌍방의 노력이 뒤따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말하고 듣는 쌍방이 대화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대화의 어느 일방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불통’이라고 낙인찍기 이전에 자신부터 불통상태가 아닌 지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성실히 대화에 임하고자 하는데 그 상대방은 들을 귀를 막고 있다면 그 대화는 불통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말 하고자 하는 사람이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해도 상대방이 들을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이 역시 불통이 되고 말 것이다.
또 말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정직하게 대화에 임해도 그 상대방이 대화 내용을 왜곡하려 든다면 이는 이해는 커녕, 오해만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반대로 대화의 상대방은 들을 귀와 들을 마음을 갖추고 있는데 말 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한 채 일방적 주장만을 늘어놓거나 되풀이 한다면 이 역시 소통할 의사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옛날 솔로몬왕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첫번째 소원이 ‘맨먼저 남의 말을 들을 마음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막강한 권력과 든든한 병력을 달라고해도 부족할 판에, ‘남의 말을 들을 마음을 달라’는 거라니?
솔로몬은 이제 왕이 되었으니 만백성을 다스리고 때로는 재판을 해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말, 억울한 백성들의 하소연, 바른 정치를 바라는 백성들의 바램들을 들을 마음이 있어야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민심을 알아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의 다툼을 듣고 진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지혜에서 보듯이 백성들을 재판함에 있어서도 당사자간에 주장하는 바를 제대로 듣고 그리고 충분히 이해해야 현명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대로 듣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요 이 지혜가 곧 바른 정치를 펴는 기초임을 솔로몬은 누구보다 일찍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도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말하는 방법, 말하는 내용, 말하는 태도에서 많이 진전 되기는 했지만 듣는 자세에 관해서는 아직도 그렇게 큰 진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무조건 말하고 보자! 누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내 말부터 하고 보자! 목소리 큰 사람이 결국은 이긴다! 는 생각 때문에 소통이 꼭 필요한 때에 불통이 되고 말기 일 쑤였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대화 상대방을 무조건 불통이라고 낙인찍어(labelling) 소통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안타까운 일들이다.
미국에서 목회(牧會)활동을 하는 목사님이 전해 준 이야기다. 최근 미국에서는 선거 캠페인 이 유권자와의 소통보다는 일방적 진영논리의 전파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사회 각 부문에서 Big Data 활용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선거도 예외는 아니어서 선거의 모든 과정에서 Big Data를 활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선거 캠페인을 벌이기 이전에 유권자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지난 기간 동안 유권자의 투표 성향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등을 거치지 않고서도 누구는 보수 성향, 누구는 진보성향, 누구는 공화당 지지, 누구는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투표 이전에 이미 가상 득표율이 파악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거 캠페인이 유권자에 대한 설득이나 소통이 아닌 진영논리의 일방적 전파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유권자 계층에게는 아예 선거전단을 보내지 않음은 물론 유세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봐야 그들의 투표 성향에 하등의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자신들과 같은 성향의 유권자들만을 상대하다 보니 반대의 목소리는 전혀 들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선거가 이념과 지역과 계층의 도그마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고 현재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래까지 지역적 구도에 갇혀있던 우리 선거가 이제는 이념적 구도, 내지는 계층별, 세대별 구도에 갇히고 마는 결과에 까지 이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적, 이념적, 계층별 구도로 득을 보려는 후보자들과 정당에게도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후보자나 정당의 소리에는 아예 귀를 막고 마음을 닫아 버리는 유권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는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자신의 이념, 지역, 세대와 다른 후보자나 정당에 갖가지 낙인을 찍어(labelling) 아예 소통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추세대로 우리의 선거 문화가 굳어진다든지 우리 사회의 소통의 틀이 굳어진다면 다른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통일 문제와 같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서 이를 국민적 합의에 의해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의 실행이 큰 장애에 부딪치게 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해 보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국사 교육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초등학교때부터 실시해 나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바르게 말하는 것 못지않게 옳게 듣는 것 까지도 교육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 몸에 베이도록 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먹고 사는 것과 관련된 정책과제 해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멀지 않아 우리 앞에 닥쳐 올 ‘국민 소통’의 장애요소들을 찾아내어 해소시킬 노력도 사회 각 부문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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